“얼마나 아프셨을까”

안상홍님 희생과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 사연이 있어 무엇엔가 이끌리듯 키보드 앞에 앉았다.

병원에 다니다

최근 건강에 작은 이상이 생겨 간단한 시술을 받고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이전에는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지만 하루도 빠짐 없이 주사를 맞다 보니 이제 바늘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진행되는 피 검사에 팔 곳곳에는 주사 자국이 생겼고, 항생제 주사를 매일 맞는 양쪽 엉덩이는 그야말로 멍투성이가 되어 하루 종일 얼얼했다. 어떤 날은 병원에서 원하는 만큼 피가 뽑히지 않아 양쪽 팔에 주사를 꽂아야 하기도 했다. 공평하게 자리한 양쪽 팔의 시퍼런 멍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짜증이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속으로 간호사의 실력 부족을 탓하기도 했다. 건강이 호전되었는데도 당분간 피 검사는 해야 한다고 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주사
주사…. 주사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컨디션이 저조했던 어느 날은 병원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울음이 났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치료와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 채 혼자 집에 가야 하는 상황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란, 다 큰 어른이 주사 몇 번 맞는 걸로 부리는 엄살이라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서러움이었다. 또 그 차가운 병원 냄새를 맡으며 하염없이 주치의의 설명을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병원 공기보다 무거운 한숨이 나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다 하늘나라에 간 아빠가 생각났다. 늘 건장하고 듬직했던 아빠였는데 항암치료 때마다 굵은 주사바늘이 싫다며 볼멘 소리를 하던 아빠였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다 큰 어른이 어리광을 부린다며 핀잔을 주었다. 아빠는 어리광이 아니고 진짜 아프다며 거의 역정을 냈었다. 이제는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있다. 내가 치료를 받다 보니 이해하게 된 아빠의 아픔이었다.

안상홍님, 얼마나 아프셨을까

아빠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럽게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께로 이어졌다.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맞는 주사 바늘도 1년이나 맞아야 한다면 손사래를 칠 만큼 고통스러운데, 안상홍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것도 아닌 고통을 어떻게 37년이나 감내하셨을까? 자녀들을 위해 매일같이 짊어지신 돌짐의 무게는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그 무게를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 자녀들을 보시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나 역시 그런 철부지 자녀 중 하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한 번도 진심으로 헤아려 드리지 못했다. 내가 아프고 나서야 하늘 아버지의 희생을 미약하나마 생각하고 마는 불효녀다.

안상홍님, 희생
아버지 안상홍님, 그 거칠어진 두 손을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던가

이제부터라도 나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안상홍님 고통과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가려 한다. 아직 몇 번 남은 치료기간 동안 주사 바늘에 찔릴 때마다, 아니 치료가 끝난 후에도 안상홍님의 고통과 사랑을 기억하며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길을 완주해야겠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며, 내 죄 때문에 견디셔야 했던 고통을 날마다 상기하며 거듭난 모습으로 하늘 아버지를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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